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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116 지난 3월 한 달 동안 산간부락을 기습한 것을 제외하고도 정주 읍을 24회에 걸쳐 거의 매일같이 기습을 했다. 정읍군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야산대라 하여 공비들의 출몰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 초기에 미처 피난가지 못한 정읍경찰서장의 목을 잘라 경찰 서 출입문에 걸어놓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국군이 전주로 후퇴할 때는 경찰서 유치장과 다른 건물에 우익인사를 가둬놓은 채 휘발 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400여명을 죽인 것도 바로 그곳이었다. 한해 전 전북에서 고창과 더불어 가장 늦게 10월 말이 되어서야 수복되었으나, 여태 치안이 불안한 곳이었다. 정읍의 유지들은 평 야지대인 신태인에 거처를 정하고 아침저녁 출퇴근을 하는 형편 이었다. 동학의 발상지인 고부를 인접하고 있는 정읍은 예로부터 한이 서린 곳이었다. 차일혁의 선조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은 그에게 고 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정읍에 대하여 잘 이해 할 수 있었다. 차일혁은 공비토벌에 앞서 필요한 선무(宣撫)용 전단 문안에 대 하여 김의택 국장과 이병희 사찰과장에게 보고했다. 정읍작전에서 살포한 전단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45) 빨치산 간부 및 전사들에게 빨치산 전사와 그 간부들에게 이 글을 보내노니, 그대들 지휘관의 눈 을 피하여 끝까지 읽어보고 믿어주시오. 이 글은 어쩌면 그대들 자신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대한 것이므로 진심으로 그대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바입니다. 빨치산 전사들, 그리고 간부 여러분. 그대들의 귀여운 자녀와 다정한 아내를 돌아볼 사이도 없이 입산한 지 이제 6개월이 지났습니 다. 작년 겨울 무서운 추위에 그대들 손발은 얼어터지고, 심신은 모두 45)‘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 후암,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