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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107 혁 부대는 적 3백 16명을 사살하고 1백 82정의 각종 무기를 노획 하는 전과를 올렸다. 경찰단위 전투로는 가장 큰 전공을 올렸다. 서해안의 정든 갈매기를 뒤로 하고 격렬했던 전투지역이었던 부 안면, 아산면, 홍덕면을 지나 정읍을 거쳐 부대 본부인 전주 서중 학교로 돌아왔다. 그동안 차일혁의 부인은 한 달째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차일혁 은 계속되는 작전으로 아내를 보살피지도 못하다가 고창작전이 끝나고 나서야 인제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 원장은 수술 경과를 설명하고는 전북일보와 각 신문에 실리고 있는 18대대의 무용담과 기사를 잘 읽었다며 직접 만나 반갑다는 인사를 했다. 아내의 병실에서 오랜만에 5살 난 막내아들이 “아빠”하며 매달 렸다. 차일혁은, 내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한 일이 무엇이 있 나 돌이켜 보았다. 차일혁 역시 평범한 가장으로 돌아와 남편노릇, 아버지노릇을 해 보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었다. 아내는 차일혁에게 여윈 손을 내밀며,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사람들 많이 해치지 말고 가급적 살려주세요.” 여러 전투에서 피로 더럽혀진 손으로 아내와 막내를 대하고 있 다는 생각에 차일혁은 소스라치며 다리에 매달리는 막내를 병실 에 남겨두고 나왔다. 전주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차일혁 부대에 종군 온 유병희 화백 의 종군 기록화 전시회가 4월 2일 시내에 있는 미 공보원에서 열 렸다. 이 자리에는 그동안 작전에서 노획한 각종 빨치산 무기도 함께 전시되었다. 특히 종군 기록화 중에서 공비들의 귀순 장면과 차일혁 부대 특공결사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세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차일혁은 도내 기관장 및 지방유지들과 개막 테이프를 끊고, 장 내를 돌아본 뒤 곧바로 우전면(雨田面)에 있는 전쟁 고아원을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