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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97 포 2문을 애기봉 기슭에 설치하여 연화봉에서 부안면으로의 퇴주 로인 장연강을 향하게 하였다. 고창경찰서 부대 150명은 장연강을 건너 부안면에 포진하였다. 3월 13일 밤. 1, 2, 3중대는 연화봉을 향하여 총 공격을 개시하 였다. 아군의 화력과 사기에 밀려 적들은 물러나기 시작하였다. 부안면을 통하는 길을 제외한 삼면으로 공격해 들어가자 적들은 부안면 방면으로 도주하기 위해 장연강을 건너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아군의 작전계획이었던 것이다. 장연강은 보통 때는 발목 까지 밖에 차지 않지만 만조 때는 서해안의 물이 밀려와 사람 키 가 넘는 깊이가 되는 것이다. 적은 만조 때라 물이 불어난 장연강 을 건너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때 애기봉 기슭에 있던 중화기 부대와 부안면에 포진하였던 고창경찰서 부대가 적들을 향하여 포화를 개시하였다. 약 20분간 의 포화로 적들을 완전 섬멸시켰다. 장연강 물이 빠진 후 전과를 확인해 보니 사살 165명, 생포 50명, 총기 151정의 대 전과였다. 이날의 전투는 <라이프>지 기사에 의해 ‘후방의 전투’라는 제목으 로 사진과 함께 게재되었다. 또한 전북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 가 실린다. 42) “차일혁군은 적과 싸울 때는 무자비하나 사살당한 공비의 사체는 대원 을 시켜 일일이 매장해 주고 있다. 살아있을 때는 원수요 죽은 후에까 지 시체까지 원수가 아니어서 묻어준다는 차 대장 아니 대한민국 경찰 의 금도와 아량은 얼마나 빛나랴.” 고창작전은 독자적인 경찰의 작전으로는 최초로서 매우 의미있 는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1중대 1소대 박석기 순경은 왼손에 관 42)‘신문에 난 전투기록 모음집’76~77쪽, 후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