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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96 에 근접해 있고, 6・25 이후 계속 적들의 손아귀에 있는 심원면, 상 하면, 해리면의 입구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서해안을 통해 북한과의 연락이 용이하고 험준한 산들이 인접해 있었으므 로 적들은 매우 중요한 근거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군의 정보에 의하면 박헌영의 직계로 남한의 공비들을 지휘 하고 있는 노동당 남부지도부 정치부책 여 某가 김 某에게 서해안 일대와 가마골만은 절대 고수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김 某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6·25 전에 남로당 전북위원장 을 지냈던 그는 노동당 중앙위원으로 전북도당 정치보위부장이며 고창방면의 빨치산 사령관이었다. 그는 전북도당위원장인 방 某와 맞먹는 지위에서 공비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고창전투에 대한 전북일보 기사 1951년 3월 11일. 고창군 부안면 반암국민학교에 지휘소를 설치 한 18대대는 공격을 개시하였다. 중화기부대의 박격포 7문과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