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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굴 인권과 평화의 성지 부족한 전쟁비용을 수탈하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는 덕양 덕이리 한산마을 뒷산인 황룡산자락 끝까지 금광을 개발했다. 당시 금구뎅이로 불리던 금정굴은 한국전쟁 국군 수복 후인 1950년 10월 6일부터 25일까지 고양경찰서에 의해 200여 명의 주민들이 학살당하는 참극의 현장이 되었다. 1995년 9월 반백년 동안 숨죽이며 살아왔던 유족들이 부모형제의 유골이나마 찾고자 용기를 내어 발굴을 시작했다. 암흑 속에 있던 153구의 유골을 비롯하여 희생자들의 손목을 묶었 던 통신선, 심장을 뚫었던 총탄, 죽음을 예감하지 못하고 지녀 온 비녀, 빗, 곰방대 등 1천여 점의 유품이 빛을 보게 되었다. 2007년에 와서야 대한민국은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했으며, 2012년 사법부 역시 국가의 불범행위에 의한 배상책임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