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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군중 1천여 명에게 위협을 느낀 일본군 헌병은 시위 군중에게 발포해 서부면 구회서 선생이 인솔하던 시위 군중 가운데 감이리 최천성(崔成), 감북리 안종헌(安鍾憲)선생이 총탄에 맞아 숨졌으나, 후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위를 주도한 이대헌, 김교영, 김홍렬, 구희서 선생은 체포되어 징역 2년~8월의 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당시 하남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은 주민 스스로가 나선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대규모 지역 독립운동으로 광주군 3.1독립만세운동의 실질적 시발점이 되었고 다른 곳으로 확대되어 보다 적극적이며 광범위한 항일 만세운동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서기 2015년 3월 27일 하남시 지역의 독립유공자 • 이대헌(1883~1944) 동부면 교산리 건국훈장 애족장 • 김교영(1856~1929) 동부면 망월리 건국훈장 애족장 • 김홍렬(1885~ ) 동부면 풍산리 건국훈장 애족장 • 구회서(1872~1951) 서부면 감일리 대통령 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