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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터 반 지하로 된 25평의 집회소로 두 개의 창이 있었고 출입구는 동쪽에 있었다. 1943년 9월 15일 신태식.반내현 그리고 뜻을 같이 한 여러 명의 선발대들이 이곳에 들어와 제일 먼저 지은 곳으로 반 지하 형태의 25평짜리 움막 교회였다. 일본헌병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바닥은 1~2m를 파고 갈대를 깔았으며 벽은 흙과 돌벽이었다. 위는 나무로 이어 시야를 흙으로 막고 그 위에 통나무로 지붕을 만들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먼저 교회 터를 정하고 돌단을 쌓은 뒤 기도회를 가졌다. 자신들의 거할 처소를 마련하기 전 먼저 합심하여 통나무 교회를 완성했다. 교회는 공동체 삶의 중심이었고, 기도로 새벽을 깨우고 예배를 드렸으며 낮에는 험한 산판에서 일하고 밤에는 관솔불을 켜고 이곳에서 경경을 연구했다. 조석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조국해방과 고난받는 민족과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헌병대 조사가 있기 전에는 자유롭게 예배를 볼 수 있었지만, 일경의 조사 후에는 이곳에서 사방으로 2~4㎞ 떨어진 깊은 산속에 흩어져 예배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