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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소사에 사우를 신축하여 이름을 응조여시관이라 하여 언행의 수업을 다시 계속 하셨다. 선생의 발원 축복과 수행의식은 전과 같이 부처님 시봉을 밝은 날과 같이 하라 하였다. 종제 둘이 모여 금강경을 특송하고 미륵불을 제창함은 장엄한 일과였으나 다만 대중의 계량이 어려워 목장을 경영할때도 제셨으니 여기에서 인생의 격조높은 교도를 이행하고 인격과 국격의 철리를 논설하셨으니 서울 이촌동 자택에서 남을 대할때는 주는 마음으로 미안은 마음에 두지말고 후회할일은 적개하고 남들은 성인으로 여기도록 마음을 다듬으라는 친필유서를 남기시고 1981년 음력 8월 19일 85세로 이연히 부동하시자 대학장으로 모시고 양주 대승사 남울에 건탑하여 사리를 봉안하였다. 관은 수원 법명은 성욱 당호는 무귀산방 탑호는 백일편조 시호는 성광존자이다. 조명기 찬, 김응현 서 서기 1982년 10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