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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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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다가 일제 관헌에 체포되여 반년간의 옥고를 치르셨다. 출옥 후에는 휘문고보와 경성제국대학의학부를 졸업함과 동시에 모교인 오산학교 교단에서 젊은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끊임없이 깨우쳐 오시다가 1943년에는 동지 박건채. 박희병, 이근칠, 제씨와 함께 또다시 옥고를 겪으시다. 조국 광복 후에는 의업에 종사하시며 민족중흥을 꾀하시고 흥사단과 오산학교를 통해 항시 정신적인 지도를 전념해 오셨는데 1950년에 6.25 사변이 터지자 선생은 공군에 솔선 입대하시여 공군병원장과 의무감을 역임하시면서 초창기의 공군발전에 많은 공훈을 남기셨다. 1960년에 제대하신 뒤에는 국민 보건에 진력하면서 다시 흥사단과 오산학교를 도와오시다가 1967년 10월 24일에 별세하시니 향년은 66세요, 슬하에 2남 6녀를 두시다. 선생은 천성의 성품이 청렴결백하시어 항상 청빈 속에서 조국 광복과 민족중흥에만 온갇 힘을 기울여오시므로써 전 생애를 겨레의 귀감으로 살아오셨으니 이제 선생의 육신은 가셨다 하되 그 고매하신 정신은 이 겨레와 더불어 영원히 살아계시다. 서기 1968년 4월 5일 정비석 찬 계화순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