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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영은 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대동군 재경리면 빙장리(在京里面 氷庄里) 출신으로 1919년 당시 평양숭덕학교(平壤崇德學校)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평양 시내에서의 3·1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평양의 시위운동은 일찍이 2월 초부터 이승훈(李承薰)의 지휘 아래 네 번의 준비회담을 거쳐 3월 1일 거사에 관한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는 동시에 숭덕·숭현학교(崇賢學校) 학생들을 동원하여 극비리에 태극기를 제작하고 서울에서 보내온 독립선언서를 준비하는 등 치밀하게 추진되었다. 그는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시위 주동자의 한사람이 되어 광무황제동도식(光武皇帝奉悼式) 명목으로 예배당에 군중을 모이게 하여 찬송과 기도를 드린 후 미리 준비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시내 각 처에 배포하면서 이날 모인 기독교인·학생·주민등의 선봉대열에서활약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