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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석 선생은, 경기도 파주(坡州) 사람이다. 1940년 조선방송국(朝鮮放送局)에 기술직으로 근무할 때 단파수신기(短波受信機)를 제작하여 해외방송을 청취하면서 임시정부(臨時政府) 소식과 구미외교부(歐美外交部) 활동을 알게되어 독립운동 상황을 가친(家親)을 통하여 이인(李仁)·조병옥(趙炳玉) 등에게 전달하였다. 1942년 8월 개성방송소(開城放送所)로 전근되어 소장인 이인덕(李仁德)과 단파수신기를 제작하여 미국과 임시정부의 한국어 방송을 통하여 연합군(聯合軍)의 승전과 광복군(光復軍)의 활동 등 국제정세를 수시로 청취하여 민족지도자들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나 1942년 12월 27일 일경에게 발각되어 피체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1943년 9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무신전신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