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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은 황찬영 공께서는 아버님 숭령전 참봉 연기 선생과 어머님 김해 김여사의 장남으로 1892년 음 7월 16일 평남도 대동군 좌경면 영장리에서 태어나시어 18세 때까지 서당에서 한문 경전들을 수학하시다가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신 뒤 숭덕고등학교 교사가 되시다. 동교 재직시인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 때는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평양 시내에 배포하는 책임을 맡으셨다가 피체되시어 2년 체형의 판결을 받으시고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동안 실형을 치르신 다음 가출옥하시다. 이듬해 숭실대학과 숭실중등교 교감에 취임하시어 8년 동안 근무하시고 사임하시다. 그 후에는 농토개량사업에 전념하시어 본 군내는 물론이고 인접한 평원 군내에 까지 많은 농지를 개발하셨는데 본디 의지가 굳으시고 근면하신 한편 관용과 포용력을 겸시하시어 남의 어려움을 항시 도우시는 품성이시어서 해마다 본군 및 평원군 일원의 빈농가에 양곡을 나누어 주시고 많은 고학생의 학자금을 대시는 등 자선과 육영에 공덕이 크셨던 어른으로 평생 이 뜻을 지니고 사시다가 1972년 12월 19일 타계하시다. 유인께서는 아버님 지목 선생과 어머님 승평 김여사의 장녀로 1891년 음 12월 7일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