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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홀이 지난 6월 30일에, 1주기 추모전시와 함께 한국 여성재단 1층에 아담하게 문을 열었다. 추모홀 건립은 후속 세대가 고인의 생애를 기리면서 그 뜻을 이어가겠다는 다짐 의 한 방법이다. 따라서 추모홀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고 인의 생전의 삶의 무게 중심이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하게 된 다. 학문후속 세대들이 대개 스승이나 선후배의 학문적 업 적을 기리기 위해 학교 안이나 학문의 냄새가 배어나는 곳 에 건립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잘 아시다시피 별세하신 박영숙 선생님은 국회의원, 당 총 재권한대행,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유엔 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 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등 수많은 공적인 일을 맡 아서 성실히 수행하신 분이다. 그런데 박영숙홀이 썩 크지 는 않지만 소담하고 아름다운 공간인 여성재단 1층에 존재 한다는 것은 삶의 대부분을 여성운동에 바치신 여성재단 의 맏언니로서의 삶의 무게가 무엇보다 큼을 보여주고 있다. 박영숙 선생님은 “딸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운동에 남다른 힘을 쏟으며 맏언니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오신 우리시대 여성운동 역사의 산증인이시다. 어리 석고 못난 남성들까지 껴안고 가야만 성평등을 이룰 수 있 한국여성재단 이사조 흥 식 다면서 그래도 딸들을 좋아하는 아빠들을 여성재단에 함 께 봉사하도록 끌어들인 박선생님의 설득력은 지금 생각해 봐도 배포 큰 포용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요즘 입법, 행정, 사법 등 3부 요직에 있는 지도자들의 째째하고 좁쌀 같은 말과 처신을 보면 더욱 그렇다. 여기에 남녀는 따로 없다. 나는 선생님의 어떤 모습보다 박영숙홀 전면에 보이는 선생 님 사진 모습을 좋아한다. 선생님의 단아한 미소 때문이다. 지금은 직접 뵐 수 없어 안타깝지만, 생전에 그 미소를 가 끔씩 접할 때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넉넉한 수용 과 포용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미소 덕분에 끌려와서 지금 까지 여성재단에 한 발을 담그고 있음은 거의 숙명이라 해 도 좋다. 그 후 1년에 한두 번 손수 지어주신 음식들을 댁 에서 대접받곤 했는데, 그 대접조차 풍성하고 넉넉했다. 넓 은 앞치마 두르신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처럼 박영숙홀은 넉넉한 포용력으로 사람을 살리고, 특 히 딸들의 요구에 귀 기울여 들어주면서 기(氣)를 살리는 공간이면 좋겠다. 그리고 재단의 할 일로서 “기부를 요청할 땐 당당하게 요구하고, 기부금을 전할 땐 공손하게 전하라” 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계속 잘 실행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여성재단이 여성운동의 지혜로운 못자리판으로 계속 쓰임 받기를 기원한다. 사립문 03 한국여성재단 박영숙홀이 주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