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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군 충혼 전적비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 14-2-03 / 관리자 : 강화군 1950년 6.25남침전쟁에서 서울이 3일만에 함락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도탈환 후 1951년 1·4후퇴 때에 북한 지역과 38도선 접경지대에 거주하면서 치안대,·청년단·학도호국대 등으로 반공결사대를 조직하여 공비소탕과 치안사업에 헌신한 청년방위군 등은 육군 “을지 제2병단”으로 편성된 후,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처(제8240)부대에 예속, 이후 “타거어여단”으로 개편된 반공유격대원으로 북한 연안일대와 적지내륙 등지에서 첩보전을 수행하며 도서지역 및 해방 방어 작전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한편, KLO부대는 1950년 9월 14일 인천 팔미도 등대를 점령하여 함정 261척이 안전하게 수로로 진입하게 하는 등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현재 총 3,875위의 8240한국유격군 전몰용사의 위패가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져 있다. 그 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후, 유엔군의 보급지원 종료와 철수명령에 따라 1954년 2월 22일 국방부 8250부대에 통합·편입되어 군번을 부여받고 발전적으로 해체되었으며, 대원들은 1992년 12월 '8240국제연합한국유격군전우회총연합회'로 통합되었다. 이에 '자유의 의병(義兵)' 들의 넋을 위로하며 한국 유격군의 명예 선양과 후세들에게 애국정신 함양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2001년 9월 1일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북녘의 미수복 산천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이 곳 교동도에 그들의 고귀한 생명과 희생을 나라에 바친 자유의 십자군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 전적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