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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앞두고 국군의 경계태세와 전투력을 탐색하고 한국 사회에 군사적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해 불법도발을 자행하였다. 이들은 주로 옹진반도부터 개성~의정부 정면에 중대~연대 규모로 집중공격을 펼쳤고, 고지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아군은 실지 탈환을 위해서 10개소의 토치카에 대한 파괴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며 이를 위해서는 육탄 공격만이 최선의 길이라 판단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성훈 소위의 제1소대는 소대장을 비롯한 전원이 특별공격에 가담하겠다고 자원했다. 그러나 인원 제한이 불가피하여 지원순으로 선발, 서부덕 이등상사 를 공격대장으로 김종해, 윤승원, 이회복, 박평서, 황금재, 양용순, 윤옥춘, 오제룡 등 9명의 용사가 선발돼 몸을 던져 적의 진지로 뛰어들었다. 이에 앞서 낮 12시경 중화기 소대 분대장 박창근 하사가 적의 토치카를 파괴하기 위해 단신으로 수류탄 7개를 들고돌진하다 전사, 앞의 9용사에 박하사를 합해 "육탄10용사"라 부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