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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공적비문 연연히 흐르는 한강이 굽어보이는 선영묘에 누어계시는 분이 바로 독립유공자 이강덕씨의 만년 유택이시다. 태종대왕의 차남 효령대군의 17대손이며 사판공의 12대손 기승씨 3남 2녀 중 장남으로 경기도 남양주군 구리읍 아천리1리 동산곡에서 탄생하여 소년 시절부터 남달리 뛰어나고 명철하여 기골이 장대하여 앞날의 큰 기약을 두고 계셨다. 부친 밑에서 엄격한 가정교육과 한학을 익히시고 선린상업학교를 졸업 후에 오직 남다른 포부를 품었더니 조국의 국권이 무너진 후 서기 1919년 민족의 지도자 손병희 선생등이 조선독립선언을 하자 기취지에 적극 찬동하여 절치부심 애국일념에 불타던지라 홀연히 화활산 같이 일어나 각면 각리 동지들을 규합 선동 선전하여 기히 독립운동에 선봉장이 되여 시위군중에 앞장서서 지휘하고 때로는 격문을 수천장식인쇄 배포하여 독립만세운동에 심혈을 아끼지 않이하고 홀로 아차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니 그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고 남음이 있었으며 또한 남다른 희생정신이 강하여 항일 군중이 왜경에게 붙들려 가서 곤욕을 치르게 되자 은신하였든 당신이 자진 출두하여 본인이 적임자임을 자칭함으로써 체포된 군중을 전원 석방시키고 대신 당신 혼자서 모든 치욕과 고초를 겪으시며 오직 일제는 국가 위배자라고 이강덕씨를 재판에 회부하여 중죄인들만 수용한다는 함경도 함흥형무소에서 기나긴 1년 6개월의 형을 살게 하니 선생의 그 고생은 얼마나 혹독하였으리. 형무소에서 출감 후에도 항상 일제들은 요시찰인이란 멍에를 씌으니 조국 해방일까지 줄곳 자유를 박탈당하고 사신 분이다. 이에 선생의 공적을 기리 빛내기 위하여 이 비를 세웁니다. (당시 30세) 장남 동재 차남 남재 손 수응 친족 대표 이천석 서기 1984년 12월 16일 대한민국정부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