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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비 1950년 6.25사변은 우리 민족과 우리고장의 대비극이었다. 우리고장 반공투사들의 투철한 항거와 반공정신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그 당시 공적과 상황을 밝히고져 마을주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1950년 음력 9월 13일 국군의 진격으로 도망하던 인민군 내무소원 40여명이 우리고장(독고개)에 들어오게 되었다. 청년들은 마을을 4개초소로 나누어 인민군 습격을 경계하던 중 이날밤 11시에 초소본부 김옥기씨 집을 퍼위한 인민군 내무소원들이 마을청년들을 총으로 위협하자 청년들은 총과 칼에도 굴하지 않고 맨 몸으로 휘협하는 총대를 붙잡아 비트는 등 백병전이 벌어졌다. 이 때 인민군의 무차별 난사로 마을청년 4명이 사망 3명이 중상을 당하였고 마을청년 6명은 인질로 납치되어 밤2시경 안웅골 정광산 기슭까지 끌려갔다. 이때 인질들을 구하기 위하여 김건식끼가 총을 쏘고 배문학씨가 수류탄을 터트리자 위협을 느낀 인민군 내무소원들이 황급히 도주하여 납치자 6명을 무사히 구하고 인명피해를 줄이는데 공이 크므로 그 상황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