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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희생자 묘소 성역화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괴뢰도당은 불범남침으로 수 많은 양민을 무차별학살하였다. 이곳 대대리 반공희생자의 묘는 북한공산당들이 전세가 불리해지자 북으로 도주하던중 용인 광주 수원 오산 평택 남양등지에서 북괴공산도당에 항거하다가 투옥된 반공인사들을 용인으로 집결시켜 철사줄로 묶어 집단학살을 자행한 곳이다. 학살당시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광섭 박용보 선생은 1950년 9월 21일 밤 9시 15분경 187명이 꽃다운 젊은 나이로 희생되었다고 그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하였다. 무명반공투사들의 영령들을 고이 잠들게 하고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반공연맹 용인군 지부 주관으로 각 기관장 및 사회단체 초중고교학생 유지 등 전 군민들이 참여하여 1985년 4월 10일 기공식을 시작으로 동년 10월 30일 묘소 성역화 및 위령탑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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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은 1948년 11월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 미실시와 친일 미청산에 항의하는 동맹 휴학으로 학교에서 퇴학되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있었던 신동엽은 1949년 부여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사범학교에서 퇴학되었지만 교원자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3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부친은 사법 서사로 노동을 해서 버는 돈으로는 학비를 대지 못했기 때문에 밭을 내놓았다. 학문을 하겠다는 아들의 뜻을 존중한 것이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