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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우리 국군이 한강선에서 격전중일 때 유엔은 대한민국을 돕기위한 결의와 더불어 자유우방들에게 파병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유엔 지상군의 특수임무 부대가 긴급 편성되어 최초로 파한케되었는 바 그 편성은 미 제24사단 예하 제21연대 제1대대(대대장 차알스 비 스미스 중령)의 B,C 중대와 동 사단의 52포병대대 A포대 장병 도합540명으로 이루어 졌다. 이리하여 스미스 중령이 지휘하는 동 특수임무부대가 부산으로 부터 북상하여 1950년 7월5일 이곳 죽미고개에 배치중 전차 33대를 앞세운북괴군 제4사단의 제5연대를 맞아 첫 전투를 벌인 것이다. 이날 아침부터 6시간15분간의 치열한 전투끝에 아군은 적 살상 127명과 적 전차 파괴 6대의 전과를 올린 반면에 181명의 피해와 중화기를 모두 잃고 철수함으로써 사실상 이 초전은 적을 경시한 결과로 패전의 한장을 남긴채 막을 내린 셈이 되었다. 또한 이 때 이 부대를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 출동한 국군제17연대의 2개 대대가 후방의 갈곳리(오산 남쪽 1키로 아래)부근에서 일전으로 한.미 연합작전의 서막을 장식하기도 했으나 곧 스미스부대와 보조를 같이하고 말았다. 이 초전을 치룬 때부터 국군의 주력은 서부를 유엔군에 넘기고 전장을 중부로 옮겨 낙동강 방위선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 고비야말로 전세가 뒤바뀌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