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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개요 1951년 1월 1일 23만 7천명의 북한군과 중공군은 서울을 목표로 한 공격을 시작했다. 임진강에서 유엔군 전선이 붕괴되면서 서울 서북상 12마일 전선 방어를 위해 영국 제29보병연단이 긴급 투입되었다. 여단의 책임지역에 위치한 2개의 계곡은 왕립 노섬벌랜드 퓨질리어연대 제1대대와 왕립 얼스터 보병연대 제1대대가 기갑부대와 포병부대의 지원을 받아 방어하고 있었다. 1월 3일 새벽 중공군 2개 사단이 공격을 감행했으며 치열한 전투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땅거미가 질 무렵 퓨질리어 연대 제1대대는 전체 유엔군의 철수에 따른 철수 명령을 하달받았으며 그들은 적과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성공적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바로 이곳 해피밸리-해피라는 지명은 우울한 역설적 표현이다-에서는 1월 3일 저녁부터 4일 새벽까지 혹독한 추위속에 극단적 전투상황들이 이어졌다. 제8왕립 아일랜드 경기병연대 전차부대와 왕립 포병연대의 지원을 받아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하루 종일 막아낸 왕립 얼스터 보병연대는 철수 명령을 하달 받았다. 적과 마주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야간철수는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작전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전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유엔 전투가가 잘못 투하한 조명탄에 얼어붙은 계곡을 따라 이동하던 철수 대열이 노출되고 말았다. 중공군은 언덕위에서 총을 발사하면서 계곡 아래로 밀고 내려왔다. 치열한 근거리 전투가 이어졌고 군인들과 전차들은 솟아오르는 불길 속에서 전투를 벌였다. 왕립 얼스터 보병연대 소속 157명의 장병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고 중공군의 포로로 붙잡혔다. 왕립 경기병대의 전차는 모두 파괴되었으며 왕립 얼수터연대 제1대대장과 왕립 경기병연대의 기병 중대장이 교전중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