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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밸리 전투 1951년 1월 3일 - 4일 (채근현 전투와 불미지리 전투로도 알려짐) 1.4후퇴는 한국 역사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1월 4일은 중공군과 북한군이 서울에 도달하기 전에 시민들이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피난을 떠날 수 있었던 마지막 날이었다. 유엔군과 한국군은 2주가 넘도록 서울을 방어하면서 시민들의 피난을 지원했다. 서울 북방에 위치한 해피밸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은 왕립 얼스터 보명연대는 1951년 1월 3일 저녁부터 4ㅣ일 새벽까지 왕립 아일랜드 경기병연대와 왕립 포병연대등 두 영국군 연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살을 에는 추위속에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왕립 얼스터 보병연대와 아일랜드 경기병연대는 비록 영국군에 속해있었지만 아일랜드 전역에서 온 많은 장병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아일랜드는 유엔 회원국도 아니었지만 많은 아일랜드 지원병들이 유엔의 기치하에 한국전에 참전했다. 해피밸리는 한국의 자유수호라는 대의를 위해 싸운 아일랜드계 병사들의 희생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전적지이다. 1951년 7월 해피밸리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한국산 화강암으로 만든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전사자에게 바쳐진 이 추모비는 '누가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을것인가'라는 왕립 얼스터 보병연대의 좌우명이 새겨져 있었다. 이 추모비는 1962년 북아일랜드로 옮겨졌고 지금은 벨파스트 시청앞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