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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청년회관건립비 나라를 빼앗긴 통분은 드디어 3.1운동으로 터져 전국 독립만세소리로 휩쓸었다. 이 고장에서도 3월 13일 18일 28일 4월 2일 네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만세의가가 일어나 많은 청년들이 피검 투옥되었는데 그 해 7월 이학이(李學伊) 지사가 옥사하자 이에 충격을 받은 청년들은 박봉삼(朴奉衫) 송정택(宋正宅) 등을 주축으로 통영청년단을 결성하였다. 통영청년단은 일제의 탄압에도 좌절하지 않고 독립정신 함양과 민족단결을 부르짖으며 조국광복운동을 전개해 왔다. 특히 지육부(智育部)를 두어 명사초청강연 연극 음악 교양강좌 등을 개최하여 주민의 자질향상에 주력해 오던 중 마침내 단원 4백여명의 의지가 결집되어 항일의 전당인 본 회관을 건립하였다. 일제의 갖은 방해와 자금난을 무릅쓰고 건립된 이 회관은 연건평 120평 규모의 2층 현대식 건물로서 총공사비 1만4천원(圓)을 투입 4년간의 공사 끝에 1923년 11월 18일 준공을 보았다. 이 회관을 마련하기까지 단원들의 굳은 의지와 단결된 노력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대지 254평을 희사한 이영재 거액의 건립비를 희사한 임철규 두 분의 높은 뜻을 기려 이 돌에 새긴다, 서기 1989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