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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1일 안동군(安東郡) 길안면(吉安面) 천지시장(泉旨市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각지의 만세운동에 고무된 임하면(臨河面) 오대동(梧垈洞)의 손영학(孫永學)ㆍ김정익(金正翼)ㆍ김정연(金正演)ㆍ장두희(張斗凞)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들은 천지시장에서 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고, 3월 21일 아침 일찍 태극기를 가지고 장터로 들어왔다. 그리고 시장에서 당목(唐木)을 사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旗)를 만들었다. 오후 5시쯤 장꾼들이 많이 모여들었을 때 손영학ㆍ김정익ㆍ김정연ㆍ장두희ㆍ정성흠(鄭成欽)ㆍ정태모(鄭泰模)ㆍ김병도(金炳道)ㆍ김술동(金述東) 등이 시장 중앙에 태극기와 기를 세운 후, 농민 30여 명과 더불어 만세를 선창하자 이에 장꾼들도 호응하였다. 이윽고 시위대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길안면사무소로 몰려갔다. 미리 출동해 있던 삼본(彬本) 순사가 시위를 저지하자, 오후 6시경 350여 군중들은 돌을 던져 면사무소 유리창과 출입문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밤 9시경 군중들은 다시 주재소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경찰들은 야만적인 무력을 행사했으며, 이에 대항한 군중들도 일제히 투석하여 유리창·문등(門燈)을 파괴하였다. 시위는 밤 12시까지 계속되었으나 경찰이 발포하자 군중들은 투석으로 항거하면서 물러섰다. 다음날 22일 오후에도 300여 명의 시위군중들은 다시 주재소로 몰려가서 시위를 재개하였다. 이들은 경찰들과 투석으로 맞서 문과 유리창 등을 산산조각 낸 후 오후 8시 경, 경찰의 발포로 물러섰다. 손두원도 천지시장의 시위에 참가하여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이틀 후인 24일, 일본 경찰이 시위 가담자를 검거하러 왔을 때 "내 나라 독립에 왜놈이 무슨 잔소리냐"고 하면서 나막신으로 일본 경찰의 얼굴을 후려쳤다. 이에 경찰은 실탄 3발을 발사하였으며, 손두원은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