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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유(鄭勝有) 미상 ~ 1908.12.16. 본적 양보 박달리 봉곡 1908.12. 의병장으로 활약 중 악양 매계 수비대는 지리산 일대 의병을 체포하기 위해 14일간 수색작전을 전개하여 정승유를 체포하였다. 그러나 정승유는 옥을 부수고 탈옥하여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 중 봉곡촌 교전 중 일본군에 피살되어 순국하시었다. ※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시었다. 이병홍(李炳鴻) 1896. ~ 1919. 본적 양보 박달리 1915. 진주공립농업학교(현 경남과기대) 3년 졸업 후 하동읍 대서소 운영 1919.3. 박치화, 이범호, 정낙영 등 12명과 자신이 운영하는 대서소에 모여 대한독립선언서(하동분, 현 독립기념관 본관)를 작성하여 3월 18일 하동장날 만세시위를 벌였다가 주동자로 몰려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다. 감옥에서 병을 얻어 출옥 3일만에 세상을 떠나시었다. 향년 24세였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땅은 선조님들의 애향과 충(忠)이 이어져온 비옥한 땅과 청동기시대부터 살아온 조화로운 땅이다. 옛 어른의 구국행적을 교훈삼고 후손에게 선현의 정신을 길이 전하고자 여기 항일독립운동 기적비를 세우니 세세손손 그 뜻을 받들고자 면민의 뜻을 모아 여기 약사(略史)를 남겨 님들의 충혼을 받드오니 영령이시여! 평안히 길이 영명하시옵소서. 2019.6.5. 추진위원장 하암 성금성 짓고 호정 김진권 쓰고 면장 김종영(화개) 면민과 함께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