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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으로부터 계승한 5천년 역사에 처음으로 이 민족에게 국권이 찬탈되고 국민의 생존권이 박탈되어 국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대둔산의 정기 담아 화암사의 불연으로 금당 마을에 탄생하시게 된 기연이시다. 선생의 성은 장이요 명은 병구이시고 백산은 그 아호이시니 1897년 12월 11일에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에서 출생하시니 부는 장만식 모는 오성녀와의 장남이시요 흥성 장씨 유의 28세손이시다. 선생은 유시로부터 성품이 항직하여 정의로운 생활을 하시며 기골이 강정하시고 엄부 자모의 슬하에서 유학을 수학하시며 호연지기의 기상을 함양하며 성장하셨다. 선생은 한일합방으로 국권이 위태롭고 국민의 생존권이 위협받음에 그 비분강개함이 기미 3.1독립만세운동으로 일어날때 고산 장날에 국하현 등과 함께 만세운동에 앞장을 서시고 그후로 오직 항일정신으로 살아오시던 중 백야 김좌진 철기 이범석 장군과 김영한 김조현 등으로부터 군자금 조달을 지시받고 조달할 방법이 막연하자 김명섭 서보국 김치삼 문병래 이홍구 등과 함께 의견의 일치를 본 후 선생께서 앞장을 서서 독립군 활동장소를 마련하고 군자금 조달을 위하여 인쇄기를 손수 운반하였고 원지를 연산역에서 인수하여 금당리까지 운반하셨다. 선생은 동지들과 함께 독립군 증표와 태극기를 품속에 간직하고 손에는 장검을 들고 우국충정을 맹세하셨다. 인쇄는 1922년 5월 중순경에 시작하였는데 조선은행권 1원권 4만여 매와 일본은행권 50전 3천매를 인쇄하고 또한 격문을 인쇄하여 왕겨 가마니에 포장하여 그해 7월 중순경 대전 근방에서 안희제 선생이 경영하는 백산상회로 보내기 위하여 기다리던 중 독립군 1인이 독립군 의복을 사려다 중국인의 신고로 체포되어 군자금 사실을 자백하게 되어서 선생과 함께 7명이 강포되어 전주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문초와 고문의 모진 고통을 오직 구국항일정신으로 참고 이겨내셨으나 인쇄한 돈의 사용처가 독립군 군자금임이 드러나자 1922년 12월 27일에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의 형을 언도받고 1923년 1월 10일에 김명섭 서보국 김치삼 등과 대구형무소로 이감된 후 혹독한 옥고를 치르셨으나 독립에의 의지는 오히려 충만하셨다. 청춘의 젊음을 옥중에서 보내신 선생은 1928년 1월 하순경 출옥되셨다. 선생은 옥고의 후유증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던 중 38세의 연세로 안을 임씨와 결혼하셨다. 그후로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법적으로 투쟁하면서 문맹퇴치와 농촌계몽을 위하여 일하시던 중 오랜 지병으로 허약해진 선생은 너희들은 공부를 하여 나라를 위해서 견위수명하라는 유언을 남기신 후 생을 83세로 타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