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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紀四二八三年 7月 日日 大靜初等學校 第三十四, 三十六,三十八回 卒業生 一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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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9세의 열혈청년교사 김영택이 대정초등학교에서 맞이하는 해방의 기쁨은 남달랐다. 이 학교의 졸업반 담임교사인 김영택은 아동 대표인 이덕빈(李德彬: 일명 李林根, 하모 출신), 이순찬(李順贊: 인성 출신)에게 내년 7월 졸업할 때는 졸업 기념품으로「대한민족해방기념비」를 세우는 일이 가장 보람찬 기념이 되리라고 설명하였다. 김영택 선생은 같이 근무하던 박용후(朴用厚) 선생에게 비문을 의뢰하였으며, 박용후 선생은 당시 모슬포 지역에서 친일을 철저히 거부한 올곧은 선비 정재(正齋) 고병오(高炳五)선생을 찾아 서로 상의하면서 당시로서는 한문이었지만 알기 쉽게 만든 글을 완성하였다. 해방이 된 후 미군정이 실현하던 1946년 7월에 대정교의 제43회 졸업식이 끝나 해방이후의 인플레 현상으로 말미암아 졸업기념비로 모은 돈으로는 모자라 기념비는 세우지 못하고, 또 학기 초인 동년 9월 1일자로 김영택 교사는 한림중학원장으로 전출하게 되어 이 기념사업은 일시 중단된 상태였다. 그리고 1948년에 이르러 대정교 제36회 졸업예정자들은 2년 선배들에 의해 추진되는 기념비 건립사업에 동조하여 졸업비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런 가운데 4.3사건에 의해 김영택선생은 뜻밖의 사고사로 이승을 달리하게 되어 1950년에 이르러 대정교 제36회들이 이에 동참하면서 건비사업은 급속히 진척되어 「해방기념비」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었고 1950년 6.25전쟁 직후에야 빛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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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 href=http://cafe.daum.net/naju-kim/8s0A/43?docid=1Gt2I8s0A4320090626214026 target=_blank>나주김씨 종친회 김영택 선생의 생애</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