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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하여 〈여공과 더불어〉라는 제목의 격문을 인쇄, 배포했다. 이춘근, 정충조 등과 같이 1934년 2월에 노동조합 준비위원회를 결성해 활동 중 일경에 발각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기소유예 처분을 선고받았다. 석방된 후 대구지역에서 일어난 공장파업에 동조하는 격문을 인쇄하여 영남 일원에 배포하였고, 일경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고향으로 피신했다. 향리에서 김낙현 손영섭 박이기 문갑이 정종주 강대진 장백윤 정종호 정성기 등과 함께 용산독서회를 경영하며 청년 학생들에게 항일 애국정신을 훈육하였고 삼천포 적색노동조합의 활동을 전개하다 150여 명과 함께 피체되어 1939년 8월 부산지검 진주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아 그 해 9월 2일 석방되었다. 그동안 정부포상이 실시되지 못하므로 소생이 동아일보 1939년 8월 26일자와 9월 2일자 등을 발굴하고 진주항일운동사 456면 457면에 등재함으로서 2008년 8월 15일 광복절에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었다. 이금복 선생은 2010년 4월 25일 진주 엠마우스 요양원에서 만 98세에 세상을 떠났으나 선생의 공적이 후세에 영구히 빛나기를 기원하는 유족들이 힘을 모아 여기에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