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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불교계가 낳은 광세의 애국자는 유일무이의 순절자 초월 구국당 백인영 대선사는 1876년 2월 17일 경남 고성군 영오면 성곡리에서 부친 백하진과 모친 김해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그 기구한 저항의 세월을 등에 업고 탄생하였다. 초월대선사는 14세의 어린 나이로 지리산 영원사 주지 이남파의 상좌로 출가하였다. 선사의 독립항쟁의 운명은 이때 이미 짊어진 것으로 본다. 그의 스승 남파스님은 생래의 반골로 항일의 선봉이었고 만해포광등과 평소 접촉이 있었던 터였다. 초월이 36세 되던해 그는 이미 현재 동국대학 전신인 명진학교 교장의 자리에 있었고 이때 경술국치를 당하여 한국민단본부라는 비밀결사를 하였고 경성 중앙학교내에 조직한 이 단체는 그후 상해임정및 독립군의 지원하기위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비밀출판물 혁신공보를 간행하여 국민의 독립의지를 고취하였다. 대선사의 항일독립운동은 이후 30여년 꾸준히 계속 되었는데 그 중요한 것만 여기 발췌하여 보기로 한다. 초월대선사는 이때 일심교라는 자기특유의 종교를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이천만 민족이 한마음이 되면 못할것 없다는 불타는 독립의지의 발로였다. 그러나 동경에서 피체되어 경기도경찰부에 넘겨진 선사는 그 참혹한 고문을 감당하여야 해였다. 이때의 무서운 고문은 대개 삼륜화삼랑이란 자가 주도되어 행하여졌는데 선사는 거이 불구폐질의 몸으로 출옥하였으나 굳고 모진 의욕과 활화산처럼 불타는 독립의지로 이를 극복하면서 일본고등경찰의 눈을 피하여 진관사 봉원사 월정사 법와사 동학사 청주 용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