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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사람이다. 천도교인으로 1919년 3월말에 변상태(卞相泰)·권영대(權寧大)·권태용(權泰容) 등과 만세시위를 계획하였으나, 변우범(卞又範)에게 만세시위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여 함께 태극기 수십장을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1일에는 창원군 진전면 일암리에서 변상태 등과 시위군중 1,500여명을 지휘하였으며 진동 헌병주재소 앞으로 군중을 선도하다가 마산헌병대의 지원을 받은 일본 수비대와 충돌하였다. 이때 일경의 무차별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는데 그는 군중을 해산시킨 후 일경에 피체당하였다. 그러나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1919년 11월에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그후 1920년 3월에는 경남 진주(晋州)에서 경남결사대를 조직하여 대장으로 추대되었으며,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 경남에서 동지를 규합하고 상해 임시정부와의 긴밀한 연락하에 항일활동을 폈다. 동년 4월에는 경상남도 일대를 순시하는 조선총독 재등실(齋藤實)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삼엄한 경비로 인해 실패하였고, 동년 6월에는 부산축항기념축하회(釜山築港紀念祝賀會)에 참석코자 오는 총독부 정무총감(政務總監) 등 일제고관을 처단하려 했으나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피체당하여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