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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容祺 先生 抗日救國活動 紀念碑(신용기 선생 항일구국활동 기념비) 조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진대 선생의 일생은 오로지 항일운동에 일생을 바치신 분으로 한국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사에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선생의 휘는 용기(容祺) 혹은 철(鐵)이라 불리었으며, 1901년 6월 1일 이곳 향제(鄕第)에서 하청면 초대 면장을 지내신 고(故) 신주병(辛周柄) 님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기가 남달라 거제보통학교 재학 시 이미 신동으로 알려졌고 졸업 후 대구고등 보통학교에서 수학하면서 동맹휴업을 주도하여 정학을 당하게 된다. 이후, 일본 동경 메이지 대학 의학부를 중퇴했다. 선생은 1922년 러시아로 건너가 고려공산당에 입당하였으며, 1923년 4월 서울에서 고려 공산당 청년회 중앙총국 책임비서가 되어 청년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1924년 2월 신흥청년동맹 결성, 7월 해방운동사(解放運動社) 결성, 11월 무정부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북풍회 집행위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