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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만세 운동을 위한 기도처 1919년 3월 1일부터 우리 겨레는 일본으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대한 독립만세운동을 자발적으로 펼쳐 나갔다. 경주에서는 천도교인,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당시 작은 장날인 3월 15일에 대한 독립 만세를 드높게 외쳤다(현재 봉황대 부근에 경주 3.1독립운동 발상지 표지석이 있음) 당시 민족대표 33인(천도교 15명, 감리교 9명, 장로교 7명, 불교 2명)을 대표하는 의암 손병희 선생은 천도교 3세 교조이다. 천도교에서는 경주를 비롯한 전국 9곳(서울, 해주, 의주, 길주, 원주, 경주, 서산, 전주, 평강)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광복 특별기도 장소로 지명하였다. 「천도교 경주교구 연혁지」에 따르면 경주교구에서는 1919년 1월 8일부터 2월 25일까지 2월 25일까지 49일간 영남지역 천도교 대표 4인(진주 신용구/경주 박인환/언양 곽해진/영천 이종원)을 중심으로 독립 선언식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당시 경주교구는 해월 최시형 선생 생가터를 포함한 현재 228-1번지 건물과 경주교구인 229번지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경주 기도처인 경주교구는 전국 9곳 기도처 중 유일하게 기록이 남아 있는 곳이며 영남지역 독립 만세 운동 거점으로 동학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① 228-1, ② 229번지 천도교 경주교구, ③ 해월 최시형 선생 생가터〉 2023년 3월 1일 (사)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