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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城 趙仁佐 先生 紀績碑(일성 조인좌 선생 기적비) 참된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항상 말보다 행동을 앞세웠고 자신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떠난 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조인좌(趙仁佐, 본명 慶奎) 선생의 호는 신옹(信翁) 또는 일성(一城)이고 1902년에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919년 마산만세운동때 선봉에서 활약하였고 1926년 광복단에 입단하여 독립군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비밀연락활동을 하다가 1927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거창형무소에서 1년6개월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식민지하에서 신음하는 민중을 구제할 방법을 궁리한 끝에 1930년대 중반 경주에 와서 대덕당(大德堂) 한약방(부용당 한약방의 전신)을 개원하여 인술로 지역사회에 봉사하였으며 수익금 상당액을 독립군 군자금으로 송금했습니다. 이후 한국전쟁 중에 대자원(大慈圓)을 설립하여 수많은 전쟁고아들의 대부(代父)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전통예술과 교육사업에도 뜻을 두어 시립국악원, 경주서도학원, 경주기술고등학교를 설립했으며, 민족정기함양과 불교진흥을 위해 이차돈(異次頓)·원효(元曉) 양성사(兩聖師) 봉찬회를 창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광복회 대구·경북회 연합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일생을 조국 광복과 경주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시다 1988년 12월 26일 타계하였습니다. 선생의 거룩한 행적을 길이 후세에 남겨 시민들에게 큰 본보기가 되고자 경주시와 뜻있는 인사들이 힘을 모아 황성공원 독산 동편에 이 비를 세웁니다. 2017년 12월 18일 조철제(趙喆濟) 삼가 짓고 최채량(崔埰亮) 삼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