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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난화 매운 향기를 남기고.. 하루 아침엔 눈이 많이 왔는데 마당에 나오셔서 눈을 쓰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시더니, 그 길로 반신을 못쓰시고 줄곧 고통을 겪으시다가, 조금 차도가 있으셔서 지팡이를 짚으시고 마당 출입 정도는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자정쯤 되었는데 아버님께서 일어나 앉아 계시면서 어머님께 하시는 말씀이 공습경보가 울리는데 창문에 검은 휘창을 내리치라고 말씀하시고 누으시는 것을 보고 잤는데, 이튿날 아침 어머님과 함께 잠에서 깨어 보니, 언제부터인지 아버님께서는 혼수상태에 빠지신 채 말씀 한마디 못하시고 누워 계신 것을 본 순간 너무도 기가 막혀 울음도 안나오던 그 때 생각이 지금도 역력합니다. -중략- 눈을 감고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에도 가슴 속에선 끊임없이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며 잠이 드셨을 것입니다. 한영숙, 「아버지 만해의 추억」, 『나라사랑』 2집, 19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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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은 1944년 6월 29일, 조선의 독립을 1년 앞두고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딸 한영숙은 아버지 한용운이 눈오는 날 쓰러졌다가 지팡이를 짚고 다닐 수 있었으나, 이 후 공습경보가 울리던 다음날 새벽 입적하였다고 기억했다. 한용운의 시신은 미아리의 화장터에서 다비(茶毗; 화장)했고, 타지 않고 남은 치아는 망우리묘소에 안장했다. 현재 망우리 한용운 묘소 좌측에 부인 유숙원도 묻혀있다. 5일장 동안에는 많은 인원이 다녀갔는데, 오세창, 정인보, 김병로, 방응모, 박광, 허영호, 이인, 조종현, 강석주, 이관구, 송병기, 김적음, 여운형, 이능유, 박고봉, 변영로, 조지훈. 조현영, 이원혁, 등 200여명이 조문왔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