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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장에서 태어나 일제때 미국에 유학해 그곳 동지들과 민족의 해방독립을 위해 몸바쳐 활약하고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정부수립에 크게 기여한 애국지사 장기영선생 여기 고이 잠드시었다. 선계는 인동장씨니 태상경 장백의 19세손이라 증조고 東杓公(동표공)대에 세거하던 원주에서 이곳으로 搬移(반이)해 기반을 닦아 祖考(조고) 漢植公(한식공)대에는 이 고을 유림의 중진으로 손꼽혔으며 考(고) 星煥公(성환공)과 妣(비) 원주원씨 사이의 4남매중 장자로 태어나니 서기1903년 9월1일의 일이다. 망국의 설움가운데 청소년기를 겪고 일본에 유학하여 1926년 그곳 중앙대학 정경과를 졸업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순조롭게 버클리대학의 정치학부를 수료하고 인디아나폴리스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는 사이 이승만박사의 각별한 知遇(지우)를 받아 31년 일본의 만주사변 도발을 계기로 외교활동에 나서 그해 12월 임시정부 외교대표부의 구미위원으로 임용되었다. 첫 착수로 당시 국제연맹에 한민족의 실정을 호소해 열강의 관심을 끄는 한편 그곳에서 체류하는 지사들과 교류하여 결의를 굳혔으며 41년 일본의 진주만공격으로 온세계가 전운에 말려들자 이듬해 한인들의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