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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영(張基永)은 강원도 영월(寧越) 사람이다. 1924년 상해 임시정부에서 안창호(安昌浩) 김 구(金九)의 권유를 받고 도미(渡美)하여 버지니아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1932년 겨울 그는 이승만(李承晩)의 부름을 받고 미국 워싱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의 위원으로 임명되어 독립자금을 모집하고, 교민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3년 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에서는 미국과 일본 양국간의 전쟁이 확대되자 위원부 직원을 보강하여 새로운 활동을 전개함과 함께 한 미 공동 전투 활동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한 미 작전에 의한 재미 한국 청년들의 전투훈련 및 참전을 미국측에 제안하여 계획이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위원부에서는 그를 비롯하여 장석윤(張錫潤) 조종익(趙鍾翊) 피터 김 등 청년들을 미 국방성 전략정보처(OSS)에 추천하여 정보 통신 등을 특수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미군에 자원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중경(重慶)에 있는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제헌국회의원, 체신부장관, 서울 시장 등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부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