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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단(蹈海壇) 이 단(壇)은 1910년 8월 일본에 의해 나라가 강탈당함에 죽음으로 이를 징벌(懲罰)하고자 1914년 11월 7일 이곳에서 도해순국(蹈海殉國)한 항일 우국지사인 벽산(碧山) 김도현(金道鉉) 선생의 애국충정을 기리고자 이 단을 세웠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朴正熙 大統領)께서 선생의 충정을 아시고 1971년 9월 3일 천추대의(千秋大義) 휘호(揮毫)를 내려 본 단을 중수(重修)하였다. 선생께서는 1852년 7월 14일 영양군 청기면 소청리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경전(經傳)과 사서(史書)를 탐독하며 세상의 동량(棟樑)이 되고자 하였으나, 나라의 운이 순조롭지 못함에 일신(一身)의 영달(榮達)을 버리고 구국(救國)의 가시밭길을 택하였으며 일본 왜적에 의한 민비시해 사건, 단발령 등으로 나라의 정체(正體)가 흔들리자 마침내 1895년 12월에 영양 청기에서 의병을 일으켜 안동과 예안, 평해를 오르내리며 맹활약을 하였고, 1896년 6월에 이르러서는 김하락(金河洛) 의진(義陳)의 영덕전투에 참여하여 동해안 일대에 있어서 한말 의병의 맥을 잇기도 하였다. 그러나 선생의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고종황제의 의병해산 칙령(勅令)이 내리자 선생께서는 의병진을 해산하고 고향에 칩거(蟄居)하며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으나, 고종명(考終命)을 기다려 효(孝)를 다한 연후, 1914년 11월 7일 동짓날, 동해 건너 일본 왜적의 무리들을 막는 구국의 혼(魂)이 되고자 여기 대진리 산수암에서 장렬히 도해순국(蹈海殉國) 하였다. 2005년 4월 23일 벽산 김도현 선생 숭모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