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page


132page

연희전문학교 입학 윤동주는 1938년 2월 17일 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4월 9일 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이들이 연희전문을 택한 것은 이 학교에 민족의식을 가진 많은 교수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현실 의식의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 윤동주의 내면과 고통은 차츰 시에 대한 집념의 확산으로 승화하게 되었다. 밖으로는 중일(中日) 전쟁이 확대되어 갔으며 안으로는 한국인에 대한 경계가 심해졌고 특히 지식인에 대한 증오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또한 걸핏하면 연희전문학교 교수나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곤 했던 시기였다.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행패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일정한 범이 없는 세상이었다. 이따금 윤동주 시인은 누이 혜원과 동생 일주에게 태극기의 모양과 무궁화, 애국가, 기미독립만세,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때부터 윤동주는 민족주의 사상과 독립운동에 대한 묵시적 동조를 꾀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시기에 언더우드 일가가 창립자가 되고 선교사 측의 정신적인 뒷받침과 국제적인 관심도가 높은 연희전문에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으려니와 매우 자랑스러운 일임이 틀림없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는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도서관 촉탁의 이름으로 있던 최현배 선생에게 조선어를 배우고, 이양하 선생에게 영시를 배웠다. 윤동주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이라는 강의를 특히 좋아했는데 이 강의는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