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竣工塔(준공탑) 한밭(大田)마을의 연혁 한밭마을 일대는 백제시대에는 동로현(冬老縣)이었고 신라통일후에는 조양현(兆陽縣)으로 되면서 우리마을도 조양포(兆陽浦)로 되었다. 고려사(高麗史)지 식화지(食貨志) 조운(漕運) 조에는 안파포(安波浦) 또는 종도포(冬鳥浦)로 부르다가 다시 조양포(兆陽浦)로 되었다. 고려말부터 왜구의 침략을 받아왔으므로 조선조 태조6년에 전라도에 사진(四鎭)을 두었는데 옥구(沃溝) 흥덕(興德) 목포(木浦)와 함께 조양도 그 하나였으며, 고려때부터 세미(稅米)를 한양으로 운송하는 해상교통의 남해안 중심지였고 정규 조정군(朝廷軍)이 주둔하여 왜구를 물리치는 수군(水軍) 근거지였다. 조선조 숙종때(1720년경)에 새로이 경주김(慶州金)씨와 추계추(秋溪秋)씨가 이 마을에 이주하여 비옥한 농토와 풍부한 수산자원이 있어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곳이 넓은 밭이 있다하여 한밭이라 이름하였고 지금에 이르고 있으면 1935년대에 앞바다의 간척사업으로 기름진 평야가 조성되어 1950년대에는 100여 세대 500여 주민이 번창하게 살았으며 1970년에는 잘 살아가는 전남도의 새마을 시범마을이 되기도 하였다. 백제가 라·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하자 백제유민들은 망명길에 올라 동로현에 도착 서기 663년 9월 25일 이곳에서 일본으로 떠났다는 백제역사 최후의 기록이 일본서기에 생생하게 남아있으며 지금도 마을에는 역사적인 선착장 포구의 흔적과 유구한 세월동안 주민의 생명수가 되어왔던 널돌로 짜맞춘 우물터가 지금도 남아있다. 〈참고문헌〉 고려사지(史志) 권 제33, 식화지(食貨志) 조운(漕運) 조(條)와 정조선수경가운(定漕船輸京價運), 세종실록 권151 지리지(地理志) 전라도편, 일본천지기(天智紀) 2년조(條) 전영래 교수의 동로고성과 조양성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