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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종사가 구허라. 후은공이 충의에 격분되여 기성재 삼연과 같이 의병을 창기하여 결사구국을 획책하니 소파공이 년소기장으로 의병에 동참하니 성재공이 연소독자로 귀가를 권유하되 공이 부재군중에 자불가독귀로 불청하고 위부독전하여 많은 전공을 수립하고 흥덕 안현에 적을 만나 역전분투하다가 장렬 순국하니 유인시년 21이라. 난극통원이욕사나 왜감을 피하여 야음으로 영광 대마 선천에 부시를 염장하다. 후에 또 후은공이 음약이사에 시모 함양박씨와 시매 미진과 옥진과 같이 수백리 원정에 주은야행하여 선산에 귀장하고 시부께서 쓰신 신담록(의소일기)을 간수하야 기록을 남게 하였고 참혹한 일로의 만행은 말로다 할 수 없다. 가재는 방화로 가산집물이 전소되어 숙식을 할 곳도 없이 청상의 몸으로 천신만고의 역경을 지나 백옥같은 신분으로 송죽같은 지절을 지켜 언론보단 실행을 항상 유녀들을 경계하여 통치마 등 왜제의 물건을 사용 못하게 하고 종자 두호를 입계하여 위부지도를 다하니 인리가 장탄하고 향도가 교천하다. 65세의 신묘에 졸하니 묘는 부라. 효손 근순이 극초하여 지업을 계승하고 기부 영성정씨 부군을 보좌하여 지사를 성취하고 많은 유숙들을 양육성가하여 황량부진한 문호를 창기하니 함칭기현이유인지유음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근순이 군수 김봉렬과 향다사와 합모하여 후은공의 충과 소파공의 효와 심유인의 열을 합하여 삼강문을 건립하여 그 장적을 표창할세 영광 임진수성사적보존회 이사장 이대연과 효손 근훈기 부 정씨와 같이 멀리 백운암을 찾아 유인의 전을 청하니 나 또한 항일유족으로 소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