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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금산에 숨어살며 그 지방 청소년에게 글과 행동으로민족의 얼을 심는데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그때 당시의 일화로 이장군은 차츰 시들어가는 민족혼을 되살리기 위해 1930年 봄 그곳 금산군 금산면의 온양 이씨 문중을 설득하여 일본의 강압에 의해서 패위된 고종황제와 비운의 마지막 임금 융희황제 두분을 모실 전각과 순종 황제의 친필을 소장할 어필각을 세우려 했으나 조선총독부의 방해로 그 계획이 좌절되자 총독부 앞에서 할복 자살도 불사한 끈질긴 투쟁끝에 허가를 얻어내는 등 굽히지 않는 애국충절은 이장군의 一生을 통해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장군은 은거지인 금산과 고향 광산을 오가면서 후진교육에 전념하다가 1935年 은거지 금산에서 향년 81세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출처 : 문화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