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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인 최상락 하사는 울산 울주군에서 6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했다. 1949년 2월 제5연대에 자진 입대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군 제3사단 제23연대 소속으로 낙동강 방어 전선으로 이동, ‘울진-영해전투’에 참전, 북한군 제5사단과 격전을 펼친 ‘영덕-포항전투’ 중이던 1950년 8월, 21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셋째인 동생 최임락 일병은 전쟁이 발발하자 형의 뒤를 따라 1950년 8월, 부산에서 입대 후 미 제7사단 카투사로 배치돼 일본 요코하마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해 인천과 서울 등을 수복하고 북진 작전에 합류, 함경남도 이원항에 상륙해 ‘장진호 전투’에 참전 중이던 1950년 12월, 19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했다.  최임락 일병은 긴 세월 북한지역에 잠들어 있다가 1995년 미국 하와이에 있는 미국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 인계됐다. 한·미 양국의 끈질긴 노력으로 신원이 확인됐고, 올해 7월 현역 군인인 조카 최호종 해군 상사의 품에 안겨 공군특별기(KC-330)를 타고 F-35A 전투기 호위를 받으며 고국으로 돌아왔다. 출처 : 아주경제 2023-11-23 '호국 형제' 73년 만에 대전현충원에 나란히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