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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 의병은 도합 백입여명이었다. 이에 멸왜전쟁을 지속하기 위하여 간도를 향하여 항해를 준비할 때인, 7월초5일 인시 관군과 왜 수비대 200~300명이 나뭇배로 위장한 세 척의 배로 기습하여 항망이 대항하였으나 선생은 잡혀서 면천 감옥에 수감되고,여기서 왜 수비대의 악귀 같은 고문으로 선생이 거의 죽을 지경인 동지달 선생의 사전 30결을 면천 아문에 몰수 당하고서야 업힐수조차없어 소 수레에 실려 출옥하였으나 선생은 끝내 소생치 못하시고 결국 섣달23일 축시에 운명하시니 아들 치영이 13세된 이가 탄우에 초빈하였다가 이듬해 정미년 10윌20일 면천 고잔리 선영 곁에 장사지냈다. 면천창의군 막하군사 삼가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