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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호남의 담양군 창평면 유천마을은 고 월봉 고선생의 유장으로서 자손이 근400년을 세거해온 고장이다. 선조의 휘는 전천 자는 군빈이니 월봉은 그 호이다. 고씨의 선세는 탐라의 고을군왕으로부터 비롯하여 중세에 장흥으로 개관을 했다. 선조의 조부는 제봉선생이요 부친은 학봉공이다. 모친은 함풍이씨니 관찰사 경의 녀로 선생을 선조11년 무인 7월 13일 광주에서 출생했다. 선생은 이러한 명문에서 태어났기때문에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하여 범아와 크게 달랐으니 아직 강보에 있을적에 부모을 모시고 누어 이렇게 누었으니 천자가 되네요하였다. 학공공이 놀라고 이름을 박천으로 지었는데 장성하자 문학이 ?성하셨고 포의로 계실적에 광해의 폐모론을 상소하여 조야의 이목을 놀라게했다. 그후에 사마시를 거쳐 곧 대과에 급제 부관길에 나서서 조정에 명성이 드높더니 때마침 광해군의 음학이 심하여 정인군자가 용납되지 못하므로 쾌연히 벼슬을 버리고 이곳 유천으로 귀은하였다. 원래 이곳 유천은 언양김씨 추재자수의 명점이었던바 그 증손 ?에 이르러 남아가 없어 여서인 이경이 물려받게 되었고 이경도 2녀만을 두었던바 뒤에 외손인 고씨가 이가기를 물받게 된것이다. 선생은 한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