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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창의기적비 최고은과 신령천이 치현하고 이일제가 강학하며 정불우헌 송눌암, 정묵제,김성제, 김명선이 이어 풍화하던 옛 태산이 고을은 군자향이다. 고로 이곳에 무성서원이 서고 여기에서 선비들이 창의한것은 우연한일이 아니다. 한말의 국운은 기울어 왜적은 을미조약을 체결하하고 국권을 강탈하니 이에 언론은 이를 규탄하고 일부 조신과 전국 각처의 유생들은 늑약의 무효와 오적의 참수를 상소하다. 시종무관 민영환이 고 동포문을 남기고 자문함에 순국하는 열사가 잇따르니 항왜의병활동은 격화하여 익년 병오에는 전국적으로 확대되다. 이때에 일어난 무성서원의 병오창의는 호남의 다수의사들이 최익현을 맹주로 기치를 들다.이를 계기로 그 기세가 호남전역에 떨치다. 당초 최익현은 을사늑약의 파기를 상소하고 왜적의 죄상을 통박하여 왜정부와 외국공관에 보냈으나 대세를 돌이킬수없음을 알고 통분하던 중 문인 고석진, 최제학의 정론을 받아들여 호남으로 내려와 정읍군 산내면 종성리에서 거사를 준비중인 임병찬과 창의하기로 하니 이는 고석진의 식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