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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전개하여 왜놈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로 결의하였다. 7월 8일 속칭 웅굴매기에서 박재달 성상용 김인봉 박재천 최동식 김임방 김위도 최외문이 다시 모여 거사를 다짐하고 동지 규합에 나섰으며 7월 15일 밤 자인면 원당보에서 동지 29명이 모여 돌이 많고 산세가 험한 대왕산에 진지를 구축하여 신축 중에 있는 남산주재소를 습격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정하고 각자 준비에 착수하였다. 초기는 구할수 없어 자인면 왕천동 대장간에서 쇠창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각의 위험성이 있어 이를 중단하고 8월 25일 밤 죽창으로 무장하고 3방면으로 대왕산에 집결하였다. 26일 아침 태양을 향하여 안창율 지사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산신단에 성상용 지사의 부친 성웅 옹이 지은 축문을 낭독 제를 올리고 거사의 성공을 빌었다. 3개소대와 특공대 정보대를 조직하고 산정에 돌로 성을 쌓아 입초불침번을 두어 적의 공격에 대비하였으며 26일 오후 3시 무장한 일경 30명의 기습 발포에 맞서 돌과 죽창으로 응전 일본 비행기가 상공을 선회하며 위협하였으나 일경을 물리친 지사들은 사기충천 대한독립만세를 한없이 외쳤다. 8월 1일 오전 일경 40명이 다시 공격해오매 3시간의 격전후 적이 물러갔으나 보급이 끊기고 식량이 바닥이다. 식량 조달차 분산 하산한 지사들은 8월 10일에서 13일 사이 전원 체포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경산경찰서에서 50여 일의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어 보안법 육해공 형법 위반 폭력행위 위반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죄명으로 옥고를 치르고 8.15광복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안창율 김경화 지사는 애석하게 옥사하였다. 1986년 12월 16일 정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게 되었으나 심사과정에서 6명이 제외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 공적비건립위원회는 1개면에서 22명의 독립유공자를 낸 것이 이 고장의 자랑으로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경산시와 대구지방보훈청 광복회 대구경산 연합지부 대구문화방송주식회사와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의 도움으로 남산면민의 정성을 모아 일제에 죽창으로 항거한 지사의 기개와 숭고한 애국정신을 높이 찬양하며 이 비를 세워 후세에 길이 전하고저 하노라. 서기 1995년 4월 일 건립위원장 이장헌 지음, 공적비건립위원회 세움, 소당 조광호 송호 이공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