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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택수 선생은 1906년 5월 20일 경남 김해군 가락면 죽림리 문학선씨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시어 1925년 3월 경북 도립 사범학교를 졸업하시자 곧 진령공립보통학교로 오시어 4학년 담임이 되셨다. 약간 스무살에 오신 그가 땀흘려 정열쏟기를 어느덧 다섯해 그동안 선생님은 김말린 사모님과 결혼 새가정도 이루시어 꽃피는 아침 달뜨는 저녁이면 토산못뚝을 거닐면서 시상에 젖어 지으신시에 가락도 붙여 어린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후 선생님은 상주 와서공립보통학교로 전근가시어 근 5년중 열렬한 항일운동하시다가 왜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득병 해와 달도 빛을 잃던날 1935년 2월 22일 서른살 짧은 인생을 사시고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나기어 높은 뜻을 지닌 교육자료 이름없는 한 악성과 항일투사의 생애를 딛고 지금 고향땅 볼림리 오봉산 남쪽 기슭에 조용히 잠들어 계시다. 성품이 인자하시고 천부의 음악소질을 지닌 선생님은 어느 늦가을 쌀쌀한 날 체육시간에 못 건너 언덕위에서 쉬는 동안 눈에 띤 풀 한 포기에 겨우살이 걱정을 담은 말잔디 노래를 지으신바 이는 다가오는 일제탄압에 나의 제자들이 어찌 견딜꼬 하는 제자사랑을 담음 바로 민족정신 그것이었으니 우리는 애절한 이 노래에서 스승의 높은 교육정신과 불타는 애국사상을 엿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더니 은사께서 이 노래를 지으신지 어언 58년 하늘나라로 가신지 48년째인 오늘 여기 일흔살이 다가오는 한 옛 제자가 하마트면 영원히 묻혀버릴뻔한 무명의 스승을 세상에 드높이 알리는 동시에 뜻깊은 이 노래가 국민학교책에 실리도록 나라에 건의하는 한편 모교 회갑의 달 스승의 날에 추모비를 다듬어 정든 뜰에 세우고 임의 큰 뜻과 꿈을 받드는 벗들과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면서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