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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구실로 징병제도의 굴레를 씌워서 침략전선으로 내몰았다. 나라 잃은 민족의 장래를 한탄하고 비통하시던 선생도 이때 강제 징모 당하여 일군대열에 들어섰으나 총을 잡는 순간 내 조국과 내 민족을 위해 신명 바쳐 싸울 것을 마음 깊이 맹세하였다. 1944년 4월 조선 복흥 의용대장 정일수 동지와 연결하고 규합된 동지 안중달 배상갑 박정환 이정수 손진환 최용교 등 13명이 무장한 채 함께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광복군대열에 동참하는데 성공하였다. 전투훈련을 끝낸 동년 7월 호북성 악성현 황석항에 주거한 일군을 기습공격하는데 선봉이 되어 동년 12월 중순 무창 적진을 폭파하고 그 혼란을 틈타서 일군 수명을 사살하였으며 동월 말일 무창 남방 일군진영을 기습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그 익년 양자강을 건너서 안휘성을 거처 하남성으로 이동하는 도중 치열한 전투가 수없이 전개되였고 동년 4월에는 적의 기습을 받고 격퇴하였으나 광복군을 시샘하던 공산군의 기습으로 많은 동지를 잃고 통분하였다. 하남성 노하구에 있는 적의 분견대를 불시 습격하여 큰 전과를 거둔 후 광복군 제1지대와 통합하고 참위에 임명되어 대적 공작에 큰 전과를 올렸다. 광복 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함께 귀국하기 위하여 중경에 가서 재중 동포 인수교육을 통한 귀국 준비를 했다. 고향에 돌아와 황폐된 논밭을 일구어 마을의 복지와 청년들의 정신교육에 힘쓰시고 대구에 옮겨와서는 동지들과 함께 조국통일을 염원하셨으며 향토발전을 위해 모금하여 진입로 확장 및 포장사업을 진행하시던 중 1992년 5월 15일 대구직할시 중구 대신2동 3031번지 자택에서 향년 69세로 영면히시니 광복회는 동지 장으로 이곳 대구 선열공원에 모셨으며 정부에서는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하고 이 비를 세웠다. 부인 남양 홍량옥 여사는 귀덕이 있고 슬하에 1남 3녀를 두셨는데 장남은 한윤이요 여는 기순 기희 기숙이며 자부는 배영애이다. 손자는 규석이요 손녀에 은주 은수이며 여서는 김영수 박태수 손태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