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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하여 일본의 침략을 맹렬히 성토한 끝에 잡혀 20여일이나 모진 고문을 당하고 풀려나서 더욱 배일의 사상은 굳어졌다.1935년 4월에는 완농광업소에 취직하여 민족 운동의 서클을 조직했다가 다시 잡혀 많은 고초를 당한 후 대륙으로 건너가서 구국의 항쟁의 길로 들어갔다.소간찬 동지와 죽음의 맹세를 손을잡고 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하남성 이북현 하읍현 일대에서 활약하다가 1942년 봄 광복군 제6변사 분처에 입단 소정의 훈련과정을 수료한 뒤 추양현으로 파견되어 지하 공작원으로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귀덕성 지역으로 이동하여 특파단 제16대대 3중대 소속으로 임천과 주가구 등지에서 항쟁중에 광복을 맞았다. 1946년 5월 12일에 고향 북진으로 귀국했다가 1948년 봄에 월남 1968년에 대통령표창을 받고 달성군 성서에서 낙농업을 경영하며 역경의 동지들과 같이 살다가 1979년 9월 9일 행년 64ㅔ로 졸하였다. 배 선우실탄은 태원인이요 자는 영기이며 녀는 영순으로 김구만과 혼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