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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정오경. 비호같이 날랜 공은 지름길로 달려간곳이 봉죽리 석벌부락 운시간에 들에서 일하던 이흥직씨의 지개를 지고 박병화씨의 옷으로 농부를 가장하였다. 지개옆에 총을 숨기고 바위백이보리옆에서 태연하게 서있었으니 왜헌인들 무었을 의심하였으리오. 공은 왜병에게 항거하고 나라를 위하여 생명도 홍모의 가벼움에 붙였으니 무었이 두려우랴. 島峙喜治(시마자키겐지)상등병은 부하헌병2명 인솔하 의기양양 말발굽소리 요란스럽게 달리던 찰나 총성이 터졌다. 말이 현장에서 폐사한다. 다시 총성이 터지자 시마자키겐지(島峙喜治)가 즉사한다. 다시 총성이 터진다. 헌병 2명은 혼비백산 총조차 진흙논에 밟아버리고 정신없이 보리밭으로 사라졌다. 숨을곳을 향하여 수발의 총성이 울렸다. 처음으로 개가를 올린 공은 계산리산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용후 공은 호서일경과 경기일각에서 닫는곳마다 전승의 용명을 날렸고 문경전투를 최후로 전후 3년간 33전1패의 의전은 끝났다. 이순불리를 통한한 공은 망명도중 서울역에서 왜경에게 잡히어 사형선고를 밨았으나 합방의 대사로 방면되었고 3.1운동당시 조국광복을 위하여 활약하다가 2년반의 영어생활을 겪었다. 해방후 계유 3.1절에 건국공로훈장 단장을 받았으며 1972년 12월 25일에 영면하셨다. 왜병들은 공의 비호같이 날래고 대담부쌍한 작전앞에 벌벌떨었고 공의 신출귀몰한 전술앞에 무릎을 꿀었다. 여기는 시마자키(島峙)비가 섰던자리 죽은 말을 바위백이에 묻었기 바위백이 말무덤이라고 전하는 곳. 이제 이 자리에 공의 위훈을 추모하고자 문백내 유지발기하여 입비건립위원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