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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성은 평강채씨요 명은 수복이며 자는 향야아기 호는 청계라 고려 평장사 경평공 휘 송년의 26세손이요 존당진사공 진형의 23세손이요 지방유지 채계석씨의 장남으로 서기 1910년 충북 진천군 덕산면 용몽촌에서 출생하였다. 천품이 특출하여 의지가 고상하고 체력이 웅대하여 기력이 비범하므로 본면에는 학도장사로 유명하였고 서울 협성실업학교 재학중에는 일제 탄압정치에 분노를 금치못하매 400여학생 대표로 독립운동을 벌리었다. 이 사실을 알은 일경은 즉시 체포령을 내리고 시위학생은 반격 상호 격투끝에 적수공권으로 총검앞에 감내할수없어 다수 체포되었으나 공은 원래 장사라 덤벼드는 일경 수명을 타도하고 장래 계획을 위하여 일시 은신하였다. 그 삼엄한 일제 탄압정치하에서 연약한 청소년학생으로써 이 의거의 대사를 주동하였으니 참으로 장하고도 용감한 대의장부라 아니할수 없다. 그 후 공은 서울 친척가에서 은신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인 덕산 몽촌 숙부댁으로 일시 은신차 내려온바 일경은 또 이 사실을 알고 즉시 체포코자 하였으나 그러나 당시 덕산면 한천주재소 한인 허용기순사가 은밀히 연락을 취하여 공은 위경을 모면케하였으니 일제의 강폭한 경찰체제하에서 당당히 동족애의 의리감과 애국지사에 대한 예우심을 발휘라였으니 그 미덕을 높이 격찬하여 맞이않는 바이다. 송은 국내에서 각고의 수난을 겪으면서도 새로